◀ 순방중 개인 SNS에 담긴 감정적 극언과
빗물에 씻겨 내려간 최전방 지뢰밭의 무거운 침묵
지정학적 단층선인 우크라이나의 가치를 폄훼하며 '나 홀로 묵계'를 착각한 외교 촌극과
안보의 골든타임을 고의로 방치한 군의 직무유기가 동시에 벌어졌다.
이 극단적인 대비가 가리키는 소실점은 단 하나다.
국가이성이 증발해 버린 2026년 9월,
그 위태로운 지반의 균열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자. ▶
ALTUS SOLUM 2026.9.27.(일)
우크라이나(Ukraine)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꽤 멀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의 입장에서 그곳을 '지구 반대편의 낯선 분쟁 지역'이나 '경제에 영향을 주는 외부 변수'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정학의 렌즈로 세계지도를 다시 펼쳐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위 지도는 현대 지정학의 뼈대를 만든 양대 산맥의 이론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 거대한 체스판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공간을 이해하면,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첫째, 맥킨더의 '심장지대(Heartland)'와 '세계섬(World-Island)'이다. 현대 지정학의 창시자 핼퍼드 존 맥킨더(Halford John Mackinder,1861-1947)가 1904년 발표한 논문 <역사의 지리학적 축(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에서 유라시아 내륙의 중요성을 처음 주장했다. 이후 <민주주의 이상과 현실(Democratic Ideals and Reality), 1919>에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대륙을 '세계섬'으로, 지도상의 붉은색 영역, 즉 유라시아의 내륙 깊숙한 곳을 '심장지대'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남겼다.
"Who rules East Europe commands the Heartland;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지배하고,
who rules the Heartland commands the World-Island;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 지배하며
who rules the World-Island commands the world."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세계섬(World-Island)'은 맥킨더가 고안한 지정학적 개념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이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단일 육지를 의미한다. 맥킨더는 지구 표면을 분석하면서, 이 세 대륙이 바다로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거대한 땅덩어리가 지구 면적의 다수를 차지하며, 인구가 가장 많고, 자원이 가장 집중된 '세계의 중심 섬'이라고 본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세계의 지리적 구조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묶은 중심 대륙인 △세계섬, 그 언저리에 붙어 있는 영국과 일본 같은 △연안섬(Offshore Islands), 그리고 세계섬에서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등의 △외부섬(Outlying Islands)으로 나뉜다.
더욱이 슬라브어로 '변경(Borderland)'을 뜻하는 우크라이나(u:가장자리, 근처 + krai:지역, 땅)는 이름 그 자체로 대륙 세력(러시아)이 이 심장지대를 장악하고 바다로 팽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동유럽의 치명적인 관문이다.
둘째, 스파이크먼의 '림랜드(Rimland)'다. 맥킨더 이후, 니콜라스 스파이크먼(Nicholas Spykman, 1893-1943)은 지도상의 푸른색 띠 모양 영역에 주목했다. 붉은색 심장지대(대륙 세력)가 팽창하려는 힘과, 이를 봉쇄하려는 바다의 힘이 정면으로 맞붙어 팽팽한 긴장을 이루는 거대한 단층선(Fault Line)을 '림랜드'라고 불렀다.
이 거대한 림랜드 단층선의 서쪽 끝에서 대륙의 압력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최전선의 방파제가 바로 우크라이나라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그 림랜드의 가장 동쪽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또 다른 방파제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두 나라는 물리적 거리는 멀지언정 거대한 림랜드의 양 극단에서 정확히 동일한 구조적 압력을 받고 있는 지정학적 운명 공동체인 셈이다.
셋째, '주변부 섬(Periphery Islands)'이다. 지도에서 짙은 청록색으로 표시된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세계섬) 패권의 바깥에 위치한 완전한 해양 세력의 본진이다. 이들은 푸른색 림랜드 국가들을 방파제 삼아 붉은색 대륙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며 글로벌 패권을 유지한다.
이 세 가지 지리적 구조를 종합한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1928-2017)는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1997>에서 우크라이나를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추축(Geopolitical Pivot)'으로 명명하며, "우크라이나를 잃은 러시아는 변방 제국으로 밀려나지만, 우크라이나를 예속시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부활할 것"이라 경고했다.
즉, 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우크라이나는 결코 동유럽의 외딴 영토가 아니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파제이자, 러시아의 팽창으로부터 유럽(EU·NATO) 전체의 안보 지형을 피로써 대신 방어하는 척추다. 물리적으로도 세계 3대 흑토(Chernozem) 지대를 품은 글로벌 식량 안보의 병목(Chokepoint)이며, 반도체 노광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가스 등 첨단 산업 공급망의 명줄을 쥐고 있는 핵심 국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를 직시해야 하는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있다. 세계 3위의 핵보유국(핵탄두 약 1,900기)이었던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으나, 그 대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전면 침공이었다. "핵을 포기하고 구두 약속을 믿은 국가는 결국 침략당한다"는 이 잔혹한 수렴성은, 현재 북한을 비롯한 잠재적 핵보유국들에게 핵무장에 대한 완벽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은 단순한 영토 수호가 아니라, 글로벌 핵 비확산 체제의 붕괴를 막아내는 마지막 둑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처럼 글로벌 안보와 경제의 구조적 뼈대가 맞물린 세계사의 중심축을 향해, 2022년 2월 러시아가 이 곳을 침공했을 때 한국의 정치인은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일이다. 당장 우리 주식시장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라고 했었다.
앞서 지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서쪽 방파제의 사투를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하는 리더십은 자신들이 발 딛고 선 국가의 지정학적 좌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아득한 '무지의 오만'은, 4년이 지난 2026년 9월 헌법상 자국민인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 앞에서 국가 이성의 완벽한 마비로 재현되었다.
외교 참사의 신호탄은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개인폰 화면에서 터져 나왔다. 9월 24일, 멕시코를 방문 중이던 현직 대통령의 개인 SNS 계정(X)에 올라온 글은 눈을 의심케 했다. 전시 국가 정상이 유엔 총회라는 다자 무대에서 행한 외교적 공표를 향해 "성과를 생색내느라 포로 송환사실을 징치고 춤추며 온세상에 광고했다"고 쏘아붙이더니, 곧이어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릅니다"라는 극언을 쏟아부었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활자를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감정이 앞서도 전쟁 중인 타국 정상을 향해 일국의 대통령이 '살인자'나 '매국노'라는 단어를 활자화했을 리 없다고, '제도의 자정작용'을 믿고 싶었다. 그정도는 걸러 졌어야 한다. 그러나 지속되는 보도에 포스팅을 직접 검색해 확인했을 때 맞닥뜨린 광경은 더욱 참담했다. 격분에 찬 즉흥적 배설이라기엔 이상하리만치 문장의 호흡이 고르고 정돈되어 있었다. 이는 정무적 보좌진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장을 다듬어 공적 입장문 형태로 배포했음을 보여준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글 하단에 버젓이 첨부된 국내 언론의 비판 기사였다.
국가원수의 공식 타임라인에 국내 정쟁용 기사를 링크해 두고 타국 정상을 들이받는 이 촌극은, 그들이 요구했다는 '비공개 묵계'가 얼마나 허황된 착각이었는지를 폭로한다. 무엇보다 전선에서 포획된 북한군 포로들의 존재와 사진은 이미 세계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된 상태였다. 전 세계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두고 한국 정부 홀로 '비공개'라는 장막을 치려 했던 것 자체가 우습다.
더욱이 '묵계'는 철통같은 신뢰와 전략적 연대가 쌓인 동맹 사이에서나 작동한다. 침공당한 순간부터 자신들을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해서 도발당한것'이라 폄훼했던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나라, 그 수도에 주한 대사관이 자리해 한국 정치권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본국에 타전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더욱이 서구(The West)문명의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가 '키이우'를 지탱해 왔다는 국제정치의 기본 구도마저 외면한 채, 우크라이나가 막연히 묵인할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물며 '한민족'인 북한에게도 막연히 기대하지 않는 선의를 타국이 맹목적으로 수용해 줄 거라 여긴 걸까?
그 답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정지지율 만회에 명백히 도움될 북한포로 국내송환 사실을 공개하자는 내부주장이 왜 없었겠습니까?"라는 서술은, 국가 안보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기준표 한구석에 이미 '지지율 손익계산서'가 올려져 있었음을 통수권자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비공개가 그토록 사활을 걸 문제였다면 사전에 외교 채널을 밀착 가동해 리스크를 통제해야 했다. 평소에는 어떠한 관리 역량도 보여주지 않고 수수방관하다가 상대가 다자 무대에서 사실을 밝히자 사후에 SNS로 난사를 감행한 행태는, 현 리더십에게 외교란 치밀한 사전 전략이 아니라 사후 실바카라을 덮기 위한 배설구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9월 25일, 우크라이나의 대표 일간지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Ukrainska Pravda)>는 한국 대통령이 자국 정상을 향해 "사소한 이익을 위해 안보를 해치는 살인자나 반역자(murderers or traitors)"라고 지칭했다고 보도하며, "국정 지지율(political approval ratings)을 만회하려 했다"는 촌극 같은 자백까지 영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역시 한국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향해 비밀 유지 위반을 주장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소식을 타전하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종전 논의 복원에 매달려 이 사안을 숨기려 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가장 참담한 것은 '비공개 묵계'를 주장하며 분노한 한국을 향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내놓은 공식 반응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strange to have kept the event secret)"이라고 일축했다. 국제정치의 엄중한 현실을 우물 안 정쟁의 문법으로 환원한 대가는 즉각적이었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한국 대통령, 젤렌스키를 살인자이자 배신자로 규정"이라는 헤드라인을 전 세계에 타전하며 대서방 선전전에 기름을 부었다. 적성국의 프로파간다 체스판 위에 자진해서 가장 완벽한 졸(Pawn)로 올라선 것이다.
이 치명적인 맹점은 같은 시각, 국토의 최전방인 비무장지대(DMZ)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반복되었다. 115번 <지정학적 유체이탈>에서 짚었듯, 9월 21일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지뢰 폭발로 수색대대장의 발목을 잘리고, 부사관이 중상을 입는 실전적 참사가 벌어졌다. 2015년 목함지뢰 도발 당시 우리 군은 사건 당일 오후 즉각 현장에 투입되어 파편을 수거했고, 6일 만에 과학적 결과를 발표하며 단호히 대응했다.
그러나 2026년의 군 수뇌부는 달랐다. 정전협정 위반을 조사하려는 유엔군사령부(UNC)의 일정을 앞두고도 '위험성'과 '절차'라는 방패 뒤로 숨어 5일 동안 현장 진입을 차단했다. 모든 사고 수습에는 골든타임이 있다. 특히 감시 장비의 사각지대라면 적의 은폐나 기후 요인으로 증거가 훼손되기 전에 현장을 선점하는 것이 군사적 상식이다. 그러나 군은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추석 연휴에는 비가 왔다. 폭발 흔적과 파편, 화약 성분 등 진실을 가려낼 물리적 증거들이 속절없이 빗물에 유실되었다고 봐야한다.
22번 <클럽재 시대의 타조>에서 지적했던 경고는 기어이 현실의 피로 돌아왔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코앞까지 철조망을 밀어붙이고 지뢰를 깔며 요새화에 박차를 가할 때, 우리는 대전차 방벽을 철거하며 스스로 가드를 내렸다. 그렇게 방치된 현장에서 군의 중추인 대대장과 부사관이 참혹한 부상을 입었다. 이것은 정쟁의 구호로 소비될 문제가 아니다. 그 지뢰밭에 서 있던 군인은 바로 나 자신이자, 내 가족일 수 있다. 그들의 숭고한 피 위에서 국가는 왜 과학적 감식의 골든타임을 고의로 유실시키는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온 자국민 포로의 존재를 밀실에 묻으려 했던 기만과, DMZ 지뢰 폭발 현장을 빗속에 5일간 방치한 고의적 직무유기는 전혀 다른 좌표에서 일어났으나 정확히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인다. 국가의 의사결정 체계가 오직 단 하나의 종속변수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것일까? 이 비틀린 우선순위 앞에서 헌법적 가치, 동맹과의 규범적 신뢰, 군사적 원칙, 합리적으로 작동해야 할 외교적 프로토콜은 철저히 거세되었다.
맥킨더, 스파이크먼과 브레진스키가 통찰한 유라시아의 거대한 지정학적 가치나, 국제정치 세계질서(Global Order)를 읽어낼 기초적 지성 없이, 오직 '내부 지지율 방어'와 '적성국의 눈치'라는 협소한 우물에 갇힌 권력. 객관적 현실을 마주할 이성을 상실한 채 편협한 쳇바퀴에 갇힌 권력 앞에서는, 어떠한 헌법적 당위도 안보적 골든 타임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일련의 사태들이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가드를 내린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씻겨 나간 증거와 동맹의 냉소, 그리고 피 흘리는 자국민의 찢겨진 살점뿐이다.
<우크라이나 지정학 관련 페이퍼>
https://journalse.com/is-geopolitics-still-relevant-halford-mackinder-and-the-war-in-ukraine/
https://iges.ba/en/analysis/geopolitics/mackinder-who-rules-eastern-europe-rules-the-world/
<SNS 공식 계정 포스팅(2026.9.24)>
https://x.com/Jaemyung_Lee/status/2103121845297783156?s=46&t=27fpzEtQGV-CRrrDwVW_bg
<언론>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6/09/25/8054969/
https://www.nytimes.com/2026/09/23/world/asia/ukraine-north-south-korea-pow-zelensk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