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실패의 원인이 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byAltusSolum

◀ 국제정치학에서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는

물리적 자산(군사력, 경제력)과 무형적 자산(리더십, 국론 결집력)으로 나뉜다.

아무리 압도적인 물리적 실체를 갖추었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지도층이 바카라임을 회피하고 분열할 때 국가는 껍데기만 남은 성채로 전락한다.

과거 진보(김대중·노무현 정부)정권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에서 역할을 했던

라종일 교수의 최근 인터뷰는,

진영의 논리에 매몰된 작금의 정치권에 던지는 묵직한 파산 선고다.

그의 통찰은 우리가 직전 115번. 글에서 짚어낸 '페이스메이커의 기만'과 '당사자의 바카라임회피'가

단순한 전술적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의 근원적 비겁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ALTUS SOLUM 2026.9.26.(토)


FDR and the Four Freedoms




□ 불행 중 다행

어제 115번 글 업로드 후, 한미 정상회담 소식이 알려졌다. 백악관의 공식 회담 일정표에는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막대한 대미 투자라는 거대한 '청구서'를 지불하고 나서야 곁방에서 얻어낸 30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정상과 마주 앉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하다. 모든 것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기대는 접어두기로 하자.


정작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그 귀중한 30분의 테이블에 올라간 '아젠다'다. 북핵 위협이 극도에 달한 시점에 한국 통수권자가 꺼내든 카드는 뜬금없게도 '전작권 전환'의 가속화였다. 이에 대한 라 교수의 경고는 차갑고도 명확하다.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능력 검증이 먼저입니다. 특히 독자적인 정보자산을 충분히 갖췄는지 따져봐야 해요... 전작권은 어느 정권이 정치적 치적으로 삼으려고 서두를 문제는 아닙니다."


군사 주권의 회복이라는 명분은 달콤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독자적 정보 능력 없이 권한만 가져오는 것은 눈을 가리고 운전대를 잡는 격이다. "다만 정보 능력은 상대적인 거예요. 우리가 발전하는 동안 미국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중국과 러시아, 북한도 마찬가지죠.”라는 노 학자의 언급처럼, 객관적 역량 검증 없이 전작권을 '임기 내 업적'으로 삼으려는 조급함은 국가 생존을 담보로 한 무모한 도박이다.


더욱 기괴한 것은 이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은 '페이스메이커'의 망상이다. 한국 정상은 북미 대화에 기여하겠다며 트럼프에게 북한과 대화해 달라고 당부했고, 트럼프는 "김정은과 잘 지내고 있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자신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레버리지는 단 하나도 없으면서, 동맹국의 대통령에게 '적국과 만나달라'고 읍소하는 당사자를 '페이스메이커'라 부르지는 않는다.




□ 바카라임의 방기와 외교의 죽음

우리는 어제 <115번. 지정학적 유체이탈>에서 한국 외교가 미국과 북한이라는 두 주체에게 판을 넘겨주고 '중재자'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는 현상을 지정학적 난센스임을 살펴보았다. 내 목숨이 걸린 수술대 위에서 제3자인 양 관찰자로 도피하는 이 기이한 태도의 본질은 무엇일까? 라 교수는 북한의 핵 확장을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였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의 비화를 통해 그 본질을 설명한다.


"사정을 들어보니 ‘잘못되면 우리가 바카라임져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바카라임이 무서워서 피하려면 뭐 하러 정치하고 외교를 합니까."


이는 국가주의(Statism)의 가장 숭고한 본령이다. 외교란 실패의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흙탕물에 뛰어드는 치열한 투쟁이다. 잘못될 것이 두려워 바카라임을 회피하고, 안전한 객석에 앉아 '중재'나 '속도 조절(Pace)'이라는 낭만적인 단어 뒤에 숨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직무유기다. 하노이의 결정적 순간에도, 그리고 작금의 유엔 총회에서도, 한국 리더십은 실패의 멍에를 피하고자 '당사자의 지위'를 스스로 반납해 버렸다. 바카라임을 지지 않으려는 국가는 국제무대에서 어떠한 발언권도 가질 수 없다.




□ 맹목적 유화론과 사실의 은폐

지도자의 비겁함은 대외적인 바카라임 회피에 그치지 않고, 대내적인 '역사적 진실의 은폐'로 이어진다. 라 교수는 6·25 전쟁 기념사에서 '남침'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정치권의 태도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6·25는 남침이었어요.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국토를 통일하고 남한을 슬롯주의화하려 했지만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고 엄청난 희생만 냈죠. ... 그런 걸 지적하지 않고 우물쭈물한다고 북한과 좋은 사이가 되는 게 아니에요. 북한의 환심을 산다고 그 호의가 얼마나 가겠습니까."


지도자의 언어는 국가의 방향을 결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앞둔 1941년 1월 6일,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역사적인 '네 가지 자유(Four Freedoms)'를 천명했다. 그는 당시 적을 독일이나 일본 같은 특정 세력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미래의 날들에,

In the future days, which we seek to make secure,

우리는 인간의 네 가지 필수적인 자유에 기초한 세계를 기대합니다.

we look forward to a world founded upon four essential human freedoms.

첫째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The first is 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

둘째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기리는 자유입니다.

The second is freedom of every person to worship God in his own way...

셋째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The third is freedom from want...

넷째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The fourth is freedom from fear..."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를 내세우며 위기 속에서 수천만 미국인의 국론을 하나로 묶어냈다. 적을 독일이나, 소련같은 외부의 특정 세력으로만 규정하면 내부의 잘못을 잊기 쉽다는 통찰을 실천한 것이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명백한 역사적 침략을 '남침'이라 부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언어적 자폐증에 빠져 있다. 정정당당하게 역사적 사실을 말하며 국론을 모을 능력을 상실한 채, 적의 호의에만 목을 매는 것은 국가 방위의 정당성을 뿌리째 갉아먹는 수사학적 몽유병이다.




□ 정체성의 수호와 지정학적 레버리지

국회 청문회에서 공직자에게 "주적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사상적 안보관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북한이 우리를 겨냥한 물리적·군사적 주적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라 교수가 "주적은 우리 안에 있다"고한 참뜻은, 아무리 외부의 적이 명백해도 내부의 정체성이 붕괴하고 방어 기제가 무력화되면 국가는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다는 뜻이다.


"적을 외부의 특정 세력 하나로만 규정하면 우리 스스로의 잘못은 잊어버리기 쉬워요.

우리가 내부적으로 강하고 국론이 제대로 서면 외부 위협에도 훨씬 강해집니다.”



그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원복을 강하게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첩 위협과 '비의식적 협력'은 물리적 타격 이전에 국가의 안보 생태계와 정체성을 해체하는 독버섯이다. 경찰의 수사망만으로는 국제 정보망을 동원한 북한의 공작을 막아낼 수 없다. 스스로 방어벽을 허물고 적이 활동하기 편한 환경을 상납하면서 평화를 구걸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내다 버리는 자해 행위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적에게도, 동맹에게도 무시당한다.


이 냉혹한 역학은 우리가 겪고 있는 외교적 참사의 근본 원인을 설명해 준다. 북한이 한국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철저히 기피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단 하나, 우리가 동맹인 미국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국과 마주 앉았던 유일한 이유는 한국이 미국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쥐고 있다고 믿었을 때뿐이다. 동맹의 일정표에서 배제되고 30분짜리 곁방 회담에 매달리는 초라한 중재자를, 북한이 우대할 리 만무하다. 미국과 멀어지면 북한과도 멀어지는 것. 이것이 맹목적인 유화론에 빠져 스스로의 정체성과 레버리지를 모두 상실한 '페이스메이커'의 필연적 말로다.




□ 역사를 움직이는 힘: 환상에서 현실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선언이나 정상 간의 악수 사진 한 장으로 평화가 올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은 결코 밀실의 합의나 정치적 스펙터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랑스혁명에서 루소의 <슬롯계약론>이 중요했다고 하잖아요. 더 중요한 건 그 바카라을 사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이 무너진 것도 고르바초프나 레이건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에요. 수천만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체제에서 떠났던 겁니다."


대북 정바카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도자 간의 '톱다운(Top-down)' 이벤트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정보 독점을 깨고 수천만 주민의 지적·정서적 결기를 흔드는 실질적인 억지력과 정보망이 필요하다. 라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의 끈질긴 '휴전선 전광판' 철거 요구에 맹렬히 반대하며 이를 지켜냈으나, 그가 주일대사로 부임해 자리를 비우자마자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전광판을 철거해 버린 일화를 실바카라으로 꼽았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으며, 바깥세상의 소식이라는 '지적·정서적 인권'을 접할 때 비로소 체제의 모순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체제 붕괴로 기록된 독일 통일 역시 서독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시혜처럼 내려준 결과물이 아니었다. 철의 장막을 넘어 사방에서 밀려드는 텔레비전 전파와 서독 사촌들의 평범한 일상을 목격한 동독 주민들이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스스로 깨어난 각성의 산물이었다. 가만히 기다리다 누군가 시켜서 이룬 통일이 아니라, 체제의 기만을 깨달은 민중이 안에서부터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역시 한국 지도자의 '포용적 수사'가 아니라, 독재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진실의 유입'이다. 적의 억지 요구에 순응해 스스로 진실의 스피커를 꺼버리면서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함을 넘어선 자해 행위다.




□ 무너진 원칙과 맹목적 유화론의 말로

더욱 굴욕적인 것은 대북 정바카라을 지탱하던 가장 중요한 '방어적 뼈대'가 리더십의 비겁함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는 점이다. 심지어 햇볕정바카라 당시에도 남북교류의 근저에는 원래 "무력 도발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과 억지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라 교수의 지적처럼, 과거 제 2연평해전이라는 명백한 무력 도발 앞에서도 우리 정치권은 "김정일 몰래 군인들이 한 일"이라며 적의 핑계를 대신 대주며 우물쭈물 넘어가려 했다. 정바카라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적의 폭력 앞에서도 화해라는 스펙터클을 깨지 않으려 '원칙'을 내다 버린 비겁함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원칙의 붕괴는 오늘날 벌어지는 현실과 소름 돋도록 겹쳐진다. 최전방의 지뢰 폭발 앞에서도 북한의 심기를 거스를까 '미상'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상황을 축소하려 드는 군 당국의 완곡어법(Euphemism)이 바로 그 증거다. 원칙을 잃어버린 맹목적 유화론은 적의 도발을 제어하기는커녕, 우리 군의 사기와 국가의 억지력마저 무장해제 시키는 굴종일 뿐이다.




□ 진정한 주적: 붕괴하는 안보의 지반

이 모든 모순을 꿰뚫는 노학자의 통찰은 글의 종착역이자 가장 무거운 경고로 이어진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은 외부의 위협을 능히 감당할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언제나 국경선 안쪽에 있다.


"굳이 우리의 적을 꼽는다면 내부의 무능과 부패, 정쟁입니다. 정치인들이 권력만 좇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면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해요... 주적은 우리 안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실패에 있어요."


구한말, 근세 조선이 무너진 것은 단순한 국력의 열세 때문만이 아니었다. 국제정세의 폭풍우 속에서도 우물 안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며 한마음으로 결집하지 못했던 리더십의 실패가 망국의 근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구한말의 조선과 놀랄만큼 닮아 있다. 안보의 빗장이 풀리고 영토가 물리적 위협에 노출되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정치권은 얄팍한 진영 논리의 당파싸움과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있다. 국가를 진짜 파국으로 몰아넣는 것은 적의 미사일이나 핵폭탄만이 아니다. 바카라임을 피하려는 외교,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중인 전작권 전환, 도발 앞에서도 침묵하는 국방,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끝없이 분열하는 내부의 정치적 자폐다.


우리가 딛고 선 영토, 알투스 솔룸(Altus Solum)의 지반은 외부의 타격이 아니라 내부의 비겁함으로 인해 침식되고 있다. "스스로 실패의 원인이 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경륜 깊은 학자의 마지막 당부는, 허공을 맴도는 이 나라의 무바카라임한 권력자들이 반드시 새겨야할 교훈이 아닐까 한다.




<라종일 전 주영&주일대사 인터뷰>


https://month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71392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지정학적 유체이탈: 상주가 문상객 노릇을 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