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하여

by써니

바로 오늘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빈자리는 없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혼잡하지는 않았다. 맞은편 임산부석에 가방에 키링을 단 여자가 앉아 있고 그 옆 기둥에 기대어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갑자기 서 있던 여자가 지하철 바닥을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찾던 물건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지 의자밑을 보면서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 의자밑을 더듬기 시작했다. 바로 임산부석 아래였다. 나도 눈으로 그녀가 찾는 곳을 살폈다. 무선이어폰 하나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임산부석 바로 아래, 의자 정 중앙 부분이었다. 손을 뻗어 무선이어폰을 집으려고 하지만 의자 모서리와 기둥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여자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을 뻗어 무선이어폰을 집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임산부가 신경이 쓰였는지 여자가 찾던 물건을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비켜서 주었다. 그래도 무선이어폰은 여자의 손 끝에 닿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내 눈에는 의자 아래 무선이어폰과 여자의 애쓰는 손이 잘 보였다. 결국 여자는 휴대폰 끝으로 무선이어폰을 앞으로 당겨서 꺼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둥에 기대섰다. 임산부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리에 앉은 임산부를 향해 무선이어폰의 주인이 살짝 목례를 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여자는 목례도 고맙다거나, 죄송하다는 어떠한 인사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임산부도 별다른 표정 없이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불편한 사람은 아마 나 혼자였던 것 같았다. 나는 뭔가 무선이어폰의 주인이 임산부석 여자에게 아주 작은 목례라도 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지하철 의자가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은 다른 사람이 침범하면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부득이 침범하게 된다면 최소한의 양해는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선이어폰의 주인은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로 고개를 숙여 뭔가를 찾는 동작을 했다. 살짝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치마를 입은 임산부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일어나서 무선이어폰을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다. 그런데도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내가 먼저 내리게 돼서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걸으면서 사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과는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 무선이어폰의 주인이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사과는 내가 잘못했을 때 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상대가 사과받고 싶어 할 때 하는 것이 맞을까? 후자라면 무선이어폰의 주인이 사과를 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임산부가 사과를 요구하거나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선이어폰 주인의 행동이 괜찮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임산부가 사과를 바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거나 지하철이니까 넘어간 것뿐 속으로는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아주 요란스러운 사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최소한의 표현을 하는 것이 좋은 모습일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았다면 감사를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어? 이거 혹시 꼰대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은 맞나 다시 찬찬히 생각해 봤다. 한참을 생각해도 나는 여전히 사과나 감사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감히 타인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가 하는 반성과 함께 내가 앞으로 하는 말과 행동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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