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는 없는 이야기
마트에서 감귤 한 봉지를 집어 든다.
가격을 보고, 색을 보고, 크기를 본다. 산지를 확인하고, 조금 더 꼼꼼한 사람은 당도나 친환경 인증마크도 살펴본다. 온라인에서 산다면 후기 몇 개를 읽어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선택은 그 정도에서 끝난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감귤 하나를 먹기 위해 농사를 공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 저녁에 먹을 채소가 어떤 흙에서 자랐는지, 비가 많이 왔을 때 농부가 무엇을 했는지, 병이 생겼을 때 어떤 판단을 했는지까지 알아보고 장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우리는 농산물을 살 때 대부분 마지막 모습을 본다. 색이 어떤지, 모양이 어떤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하지만 우리가 먹게 되는 그 결과 앞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있다.
씨를 뿌리거나 나무에 꽃이 피고, 비가 오고, 풀이 자라고, 벌레가 나타난다. 어떤 해에는 너무 덥고, 어떤 해에는 비가 지나치게 많이 온다. 농부는 그때마다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풀을 벨지 남길지, 물을 더 줄지 기다릴지, 병해충에 어떻게 대응할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넣지 않을지.
그 선택들은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농산물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결과는 자주 보지만 과정은 잘 묻지 않는다.
유기농이라는 표시를 보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벌레 먹은 채소를 보면 더 자연스럽게 키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격이 비싸면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유명한 산지에서 왔다면 조금 더 믿음이 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유기농이면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벌레 먹은 채소는 그렇지 않은 채소보다 더 건강할까. 농약이 검출됐다는 말과 위험하다는 말은 같은 뜻일까. 친환경 농산물이 비싼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당도가 높은 과일은 정말 더 좋은 과일일까. 농부가 직접 판매하면 우리는 그 농산물을 더 믿어도 될까.
하나를 묻기 시작하면 질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농업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걸 만나게 된다.
유기농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농약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 농부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풀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관리하지 않은 풀이 작물과 경쟁하는 때도 있다. 좋다고 알려진 방법조차 장소와 날씨, 작물과 관리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연구에서도 답이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효과는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어 있고, 어떤 것은 특정 조건에서만 나타난다. 해외에서는 확인됐지만 제주에서는 아직 같은 결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결국 농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문제도 남는다.
그래서 이 연재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
유기농을 선택하라고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관행농업을 변호하거나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농산물을 살 때마다 생산과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할 생각도 없다.
그저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이 어떤 과정을 지나 우리 앞에 오는지 조금씩 들여다보려고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말이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구분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다음에 농산물을 고를 때 이전에는 없었던 질문 하나쯤 생길지도 모른다.
이게 유기농인가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어떻게 키웠을까. 왜 이렇게 키웠을까. 이 가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알고 이 농산물을 선택하고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대부분 가격을 보고 농산물을 살 것이다. 맛있어 보여서 사고, 익숙해서 사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집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만 가끔 한 번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궁금해진다면 좋겠다.
그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가 묻지 않았던 것들》은 그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