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안 만난다고 하더니, 언중도 경화한테 맘 있는 거 아냐?
범준이 나를 불렀을 때는 학생이 거의 없었고 이젤 앞에서 그림 그리는 학생도 없었다. 화실에 들어서기 전 복도에서부터 여러 학생이 북적대며 돌아다니는 모습들은 이채로 왔다. 마치 그들은 나를 새로 학원에 등록하러 온 학생같이 곁눈질을 주며 스쳐 갔다. 누군가 한 사람을 불러서 경화를 불러 달라고 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한창 머뭇거리다 화실 문을 들어서려는 머리가 긴 여학생에게 말했다. 박 경화를 불러 주세요.
-아, 경화 언니요? 경화 언니 만나러 오셨어요? 언니! 언니를 찾는 분이 오셨는데요? 남자분이세요.
남자라고 하니까 화실 안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남자? 남자래. 우와….
드디어 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단발머리에 얼굴이 무척 하얗고 맑았다. 그게 내 첫 느낌이었다. 범준이 애가 타게 좋아할 만한 외모였다. 경화는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자판기가 있는 낡은 소파 부근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금방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권했다. 그리고 금방 누구냐고 물을 거 같은 얼굴로 입을 떼려는 거 같았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범준이랑 같은 학교에 다녔던 김 언중입니다. 같이 그림을 그렸었죠.
-아. 네.
-범준이 이민 간 거 아시죠?
-네.
나는 경화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내참에는 여러 이야기가 술술 나올 거 같았는데, 실지로 그녀 얼굴을 보니 목소리를 가다듬을 수 없이 떨렸다. 그 눈부신 하얀 얼굴이 반사되어 바라볼 수가 없었다. 복도 창에 시선을 두고 약간의 말미를 두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편지는 혹시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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