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벨 정원에서

한 음악가의 여름학교 일기

by박민희

미라벨 정원에서
한 음악가의 여름학교 일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여름은 언제나

음악으로 시작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악보처럼 느껴지는 곳.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교회 종소리가 프렐류드처럼 흐르고, 거리의 공기는 이미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모차르테움 국제 여름 아카데미에 참가할 때마다

내가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캠프 일정표를 확인한 뒤, 먼저 자유 시간을 찾는 일.
연습 시간이 아니라
숨 쉴 시간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생기면 나는 늘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미라벨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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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에게도 쉼이 필요하다
여름학교의 하루는 치열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연주자들, 긴장 속의 마스터 클래스, 교수들의 한마디 평가에 마음이 흔들리는 시간들.


음악은 아름답지만
음악가의 내면은 늘 조용한 경쟁 속에 있다.


더 좋은 소리.
더 깊은 해석.
더 완벽한 연주.
그러나 인간은 악기가 아니다.


숨을 쉬어야 하고, 멈춰야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다시 연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미라벨 정원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장미가 가르쳐 준 템포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연습실의 긴장이 풀렸다.
정돈된 산바카라로와 분수, 멀리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 그리고 여름 햇살 속에서 피어나는 장미들.


특히 내가 사랑했던 곳은
관광객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난 장미 정원이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바카라을 펼치고 커피를 마셨다.


바람결에 퍼져가는 장미의 향기
시간이 흐르며 느껴지는 게 있다


장미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음악가인 나는 늘 빨랐다.
더 배우려 했고, 더 증명하려 했고, 더 완벽해지려 했다.
하지만 장미는 자신의 계절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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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노력으로 피지 않는다.

시간과 햇빛,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인내가 꽃을 만든다.


여름 캠프를 참가하며 나는 연습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다.
템포를 조절하듯 삶의 호흡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내려놓을 때 음악이 들린다
미라벨 정원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연습을 하지 않는데도
음악이 더 또렷하게 들린다.


분수 물소리는 현악기의 트레몰로 같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목관의 스타카토처럼 흩어졌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마치 현의 하모닉스 같았다.


그곳에서는 세상이 이미 연주 중이었다.
나는 그저 청중이 되었다.


음악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정원이 가르쳐 주었다.


☆모차르트의 도시에서 배운 겸손
잘츠부르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도시는 위대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박하다.


골목은 작고, 사람들은 느긋하며, 음악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나는 미라벨 정원에서 종종 생각했다.
왜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렇게 자연스러울까.


아마도 그는
음악을 ‘성취’가 아니라
‘삶의 언어’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깨달음은 연주자로서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 한 음악가의 비밀 장소
캠프 마지막 날이면 나는 늘 다시 그 벤치를 찾았다.
떠나기 전, 마음속 악보를 정리하듯 앉아 있었다.
바카라을 덮고 커피 잔이 비워질 때쯤
잔잔한 평안이 찾아왔다.


연습실에서 얻은 것은 기술이었고,
미라벨 정원에서 얻은 것은 음악의 이유였다.


왜 연주하는가.
왜 무대에 서는가.
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가.


그 답이 장미 사이에서 조용히 피어났다.


☆지금도 이어지는 산바카라
한국으로 돌아와 바쁜 일상 속에 있을 때도
문득 미라벨 정원의 오후가 떠오른다.


연주 전 무대 뒤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나는 그 정원을 마음속으로 산바카라한다.


음악가는 결국
자신 안에 한 장소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모른다.
내게 그곳은
연습보다 깊은 배움이 있었고,
침묵 속에서 음악을 다시 만났던 공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안다.
언젠가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면
가장 많이 찾게 될 곳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장미가 피어 있고,
바카라 한 권과 커피 한 잔이면 충분했던 그곳.
미라벨 정원.


그곳에서 나는
연주자가 되기 전에
다시 한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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