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이별

byoj

나이가 들면서 장례식장에 갈 일이 정말 많아졌다. 부모님을 떠나보낼 나이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두 분 부모님 모두 살아계신 친구가 이제 드물다. 나도 8년 전엔 시아버님을, 10년 전엔 친정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부모님과의 이별을 실감했다.


다른 사람 장례식장에 조문 갈 때와는 전혀 못 느끼던 슬픔과 고통이었다. 막상 상주가 되어 보니 위로가 왜 필요한지 조문을 온 사람들을 통해 느꼈다. 바쁜 시간을 내서 밤늦게라도 와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뒤론 되도록 장례식에는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부고 때마다 일일이 다 찾아다닐 수는 없지만 인사를 해야 하는 분이라면 되도록 꼭 참석해서 유가족을 위로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잊히지 않던 장례식이 몇 번 있었다. 잘 알던 선배 어머님의 부고 소식이 갑자기 들렸다. 건강한 모습으로 우연히 식당에서 뵙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까지 드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놀랐다. 편안히 돌아가셨다지만 가족들 입장에선 준비되지 못한 이별이라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았다. 조문하고 위로를 전하고 난 다음 해에 아버님의 부고 소식이 또 다시 들렸다.


1년 사이로 다시 장례를 치르는 지인을 보니 안타까웠다. 더 기가 막힌 건 어머님 장례식 때 방석을 밟고 미끄러지시면서 고관절이 다쳐서 꼼짝 못 하시다가 몸이 쇠약해지셨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불행한 일이 생겼는지 자식들 입장에선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몸이 점점 더 불편해지면서 잠시 요양원에 모셨는데 바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부부애가 좋으면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어르신들은 고관절이 다치면 바로 돌아가실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들수록 넘어지는 걸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활동을 못하시면서 근육이 줄어들고, 소화력이 떨어져 식사를 못하시게 되면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신 교회 권사님은 90세가 훌쩍 넘으신 어머님을 뵈러 고향에 갔다가 그곳에서 쓰러지셨다고 했다. 시골이라 응급차가 왔어도 골든타임을 놓쳐 수술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다. 평소에도 조용하고 단아하신 권사님이셨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돌아가셔서 가슴이 참 먹먹했다. 이틀 뒤에 딸이 먼저 떠난 지도 모른 채 어머님도 돌아가시면서 같이 초상을 치렀다. 모른 채 돌아가신 것이 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모녀의 끈이 애틋하게 연결되어 따라가셨나 싶기도 했다.


부고 소식을 접할 때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인사를 전한다. 삼가란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란 뜻이다. 장례식장을 가서도 같은 마음으로 조문을 하고, 혹시 못 갈 경우에는 문자나마 위로를 전한다. 검은 색 옷으로 차려입고 가는 순간부터 진심으로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고, 조문하면서는 정중히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앞으로 장례식장에 갈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가까운 친척들부터 머지 않아서 또 보내드려야 할 두 분의 어머님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고 침통해진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최대의 숙제이다. 가슴 아픈 이별이 되지 않도록 살아 계실 때 마음을 써야 한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이란 숙제를 맞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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