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니...

ㅡ"어쩔 수가 없다"ㅡ

byoj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고, 자기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일일 뿐이다. 미국 소설 <AX>란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가 외국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해서 기대를 갖고 봤지만 개인적으론 별로였다.


"올드보이"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박찬욱 감독이 이후에 만든 "친절한 금자씨"나 "아가씨" "헤어질 결심"도 호평을 받았지만 감독님의 영화 세계를 이해 못해서인지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블랙코미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지만 어째서 제지 회사에서 정리 해고 되어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 만수의 선택이 살인이란 말인가. 남의 생명을 짓밟고, 자신의 마당에 묻고는 사과나무를 심고, 과연 죄바카라감 없이 마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남편을 동정하며 애썼다고 다독이는 부인 미리는 더욱 대담하다. 자신의 집, 자신의 자식만 소중하다는 철저한 이기주의적 사고와 침착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리 해고를 하는 회사도, 자신이 고용되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동안 누려왔던 풍요로운 생활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미래가 두려워도 모두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불행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쓴다.


25년 일한 회사에서 해고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의 막막한 심정과 처지는 제2의 인생을 선택해서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아파트 관리소장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경비나 산업체 설비기사 일을 하기도 한다. 박봉의 마을버스 기사도, 택배일을 하며 투잡을 뛰거나 자영업을 하기도 한다. 일할 곳은 많다. 익숙하지 않아도 자기 땀과 수고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얻는다. 자본주의 현실을 풍자하고 실랄하게 비판했다고 보기엔 정말 불편했다.


자식의 범죄 앞에서도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보다는 범죄를 덮기에 급급한 부모였다. 아빠는 피해자를 협박하고, 엄마는 미인계를 쓰고, 자식에겐 바카라임을 회피하게 만든 부모가 과연 자식을 사랑한 행동인지 의문스럽다.


발상 자체가 희화된 소설이기는 해도, 만수 때문에 희생된 두 사람의 지원자와 관리자 한 사람의 목숨값으로 얻은 그 자리에서 일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마지막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라리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서 일하다가 사고사라도 당했다면 더 인간적이지 않았을까. 완전 범죄에 인과응보의 상식을 완전히 깨버린 영화였다.


남편 범모를 죽인 부인. 남편의 실직과 무능력을 비난하고, 외도 현장을 들키고도 당당한 부인이 만수 대신 남편을 총으로 쏘고 자신의 마당에 묻어놓고, 자유를 찾은 것마냥 환호한 장면에선 분노가 일었다. 경찰에겐 우울증과 알콜 중독을 앓고 있다고 거짓 진술을 하고, 경찰은 그가 다른 지원자인 시조를 죽였을 거라고 오히려 만수에게 조심하라니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유도 모른 채 자기가 살던 앞마당에 묻힌 지원자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그렇게 찾은 행복은 정당할까. 딸이 첼로를 완주하며 천재성을 보이고, 아들은 풀려나고, 남편은 다시 고용되고, 반려견들이 돌아오고, 집은 이사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들은 파렴치한에 불과하고,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절대 평온할 수 없다.


"묻지 마 범죄"는 슬롯악이라며 비난하면서 만수의 계획된 범죄와 어처구니 없는 살인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다. 곳곳에 코믹 요소까지 넣어 희화시키면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참 어이없고 난해했다. 다만 그들의 부조리와 위선과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보면서 분노케 만드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었다면 감독님의 목적은 달성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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