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셰린의 밴시 - 바깥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영화 에세이

by분의일




영화가 시작되면 하얀 화면 속에서 성스러운 음악이 들려온다.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의 노래다.

의미를 이해할 수 없으니 오롯이 소리에 내 감각이 반응한다.

구름이 걷히며 보이는 푸르른 항구마을.

바다 한편엔 무지개가 떠 있고, 파우릭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경쾌하게 걸어간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성모 마리아상이 온 마을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파우릭은 여느 때처럼 함께 펍에 가려고 콜름을 찾아간다.

아무리 불러도 콜름은 나오지 않는다.

창 안으로 보이는 콜름은 담배만 피울 뿐 반응이 없다.

얼마 후 펍에서 만난 콜름은 이제 파우릭이 싫다고 한다.


가끔 사소한 이유로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접촉사고 후 위로받고 싶어 곤두선 신경으로 전화한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냉정한 말로 잘잘못을 따지는 나에게 오만정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후 친구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우연히 길에서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그를 불러 세울 용기가 없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도 날 보고 못 본 척한 듯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뭔가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오래전부터 꾸준히 쌓여온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을 하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저 녀석은 은근히 날 무시했었어.

그런 놈은 만날 필요 없어.

잘됐다. 이 기회에 안 보면 되지.


아~ 후련하다!


펍에서 연주하는 콜름의 표정도 그랬다.

뭔가 후련해 보였다.

콜름은 더 이상 파우릭의 지루한 말이 싫다.

파우릭이 콜름의 연주를 들어주듯, 콜름도 파우릭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안 되는 걸까?

아니. 조랑말의 똥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듣는 건 쉽지

않다.

파우릭은 원래 그랬고, 콜름은 변했다.

콜름은 이제 평온하게 작곡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

둘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러나 파우릭은 납득할 수 없다.

콜름의 진지한 협박도 파우릭의 답답함을 막을 수 없었다.

참지 못한 콜름은 손가락을 자른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또 다른 화를 불러온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서막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를 백 개쯤 삼킨 듯 속이 답답했다.


어느새 영화 속으로 들어간 나는 콜름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이니셰린은 아름다운 섬이 아니었다.

파우릭은 멍청하고 구질구질하며 이기적이면서도 잔인했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널 안 보고 싶을 뿐인데, 내가 무슨 바카라임까지 져야 하니?’

‘건달들이 손가락을 자르듯 내 손가락이라도 자를까?’

‘그래. 좀 갑작스럽다는 건 알아. 그런데 내겐 시간이 없단 말이야. 이별은 원래 아름답지 않잖아!’

‘니 마음은 알겠어. 그러나 좋은 마음도 때론 폭력이 될 수 있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조차 그럴 수 있잖아.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어. 지금 너의 마음도 내겐 폭력적이야.’


섬의 안과 밖은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린 각자의 이유로 싸우고 있다.

그 이유가 채플린의 말대로 멀리서 보면 희극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겐 심각하다.

아니, 이미 싸움이 시작되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한 번 빠져들면 바깥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육지로 떠난 동생 시오반이 파우릭을 불러도 파우릭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기 싸워야 할 이유가 생긴 이상 더욱 그렇다.


섬 안에서 전쟁의 서막이 열릴 즈음, 섬 밖의 포성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내 다시 울릴 것이다.

당한 놈이 이제 복수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했던 이유가 이제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돼버렸다.


영화가 시작될 때 들려오던 아름다운 음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듯(Polegnala e Todora -불가리아 민요. 바람 때문에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 이 아름다운 섬이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영화 밖 나에겐 그저 아름다운 이니셰린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세상은 온통 영화가 돼버렸다.


파우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역시 파우릭에게 폭력적이지 않는가?

어쩌지?

시오반처럼 나도 떠나야 하나?

어디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