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며

잘 알고 싫어하자

by집샤

농담과 개드립의 성패는 오로지 상대의 반응에 달려 있다. 본인은 유머라 생각했어도 상대가 재미없어하거나 싫다는 거부감을 표한다면,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다. 바른 자세로 진중한 마음을 담아 정중히 사과하는 것, 그것이 슬롯적 지능을 갖춘 이의 올바른 소통 방식이다.


다만, 이를 기회 삼아 어느 쪽이든 무례하다는둥 불편하다는둥 엿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란 위선에 가깝다. 선택적 도덕심에 취해 타인을 억압하려는 태도에는 굳이 예우를 갖출 필요가 없다. 그들의 오류를 일일이 교정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처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편협한 세계에 갇혀 지내다 끝내 공허함에 잠식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하나의 유희가 될 수 있다.


애정의 문턱은 낮아도 좋다. 좋아하는 마음은 조금 얄팍하더라도 삶을 경쾌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혐오의 문턱은 지극히 엄격해야 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휩쓸리듯 내뱉는 혐오는 사고를 갉아먹고 시야를 좁힐 뿐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보다 '왜' 싫어하는지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 때, 그 감정은 비겁한 투정이 아닌 확고한 가치관이 된다.


좋아하는 것은 가볍게 시작하되, 싫어하는 것은 반드시 제대로 알아본 뒤에 판단하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무분별한 이 대혐오의 시대에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는 최선바카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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