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만 남기고 떠난다.

by전성배

자주 옅은 지진이 일어나는 곳. 아직까지 큰 위험은 없지만 그런 문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여진이 가라앉을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오래 통화하는 관습이 자리한 마을이 있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본 적 없지만, 그들의 눈빛을 상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는 미래를 상상해 본 눈. 실제로 그 미래에 근접했던 아찔한 순간을 아는 눈. 그리고 그런 순간을 지날 때마다 사랑하는 이를 사랑으로만 바라보는 눈.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몸짓을 본다.


유독 아끼는 사람과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때가 오면 한 번씩 나는 그 마을로 떠난다. 눈을 감으면 순식간에 여진이 몸 흔들며 그를 잃는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한평생을 살다가 다시 눈을 뜨면 이 사람과 빚었던 이견들이 사실은 우리가 나눴던 그리고 나눠갈 시간 앞에선 아주 사소한 것임을 깨닫는다. 반면 매일 저녁 습관처럼 줄 세웠던 일상의 전면, 그 뻔하고 반복적인 대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 가장 거대하고 소중한 것이 된다. 좋았던 기억만 겨우 손에 쥐고, 나머지를 놓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한없이 맑고 선한 것들만 남는다. 사람은 떠날 때 부정한 것만 끌어안고 떠난다. 혹은 내가 떠나보내거나.


아버지도 부정한 것들만 갖고 떠난다. 아버지가 떠난 직후 가장 걱정했던 장례식과 빚 문제는 고민한 것에 비해선 쉽게 해결되었다.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의 연락도 아직까지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도리어 앙심을 품을 만한 사람들이 그저 어머니와 누나를 잘 챙기라는 말만 남긴 채, 아버지의 발인까지 돕고 자리를 떠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하루뿐인 장례식 날, 그들은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조문을 왔다. 한데 모여 오자고 말이라도 맞춘 듯 한시에. 익히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누구인지도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도 모르는 나는 불안감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작은 아버지가 내 표정을 본 것인지 조용히 다가와 아버지의 친구분들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작은 아버지도 그들의 목적까지는 알지 못하기에, 나는 여전히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조문객들처럼 부의를 하고, 아버지 앞에 와서 각자 꽃이나 향을 올렸다. 대열을 맞추고 절을 하고 이어서 나와 맞절을 했다. 이제 남은 인사에서 과연 무슨 말을 듣게 될까. 불안감이 한층 고조되었다. 심장이 두근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들 중 대표로 한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을 겪게 되니 마음이 아프다. 고생이 많지? 아버지는 좋을 곳에 가셨을 거야.”


“… 감사합니다.”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그길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며 옛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함께인 아주 옛날의 이야기. 아버지가 ‘명식이’라고 불리는 게 당연했던 고교 시절의 이야기. 몇 시간을 내리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떳떳한 모습으로 존재하던 시절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들은 아주 잠깐, 아버지가 꿔간 돈도 저지른 실수도 잊으려는 듯했다. 그들에게 이 자리는 그저 가까웠던 친구 한 명이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 애통한 마음을 서로서로 위로하는 자리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배웅하기 위해 입구로 갔을 땐 대부분 나간 뒤였다. 마지막에 나가던 아저씨에게만 겨우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내일 아침에 일찍 오겠다는 말과 나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운구할 사람이 없다는 걸 들은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분들은 다시 와서 작은 관에 담긴 아버지를 차에 옮겼다. 그리고 함께 부평 가족 공원으로 가서 아버지를 다시 내리고 화장터로 인도하는 길까지 함께해 주었다. 내내 눈물 한 방울 없는 건조한 애도가 따랐다. 친구들은 아버지가 화장터로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에 “잘 가라.”라는 말과 나에게는 남은 가족에게 잘하라는 말, 아버지를 드는 데 썼던 흰 장갑을 넘기고 떠났다. 아마도 나에게는 마지막일 아버지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를 보내고 난 뒤에 몇 번 누나와 어머니를 만났다. 용건은 그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애써 함께 밥을 먹지 않으면, 혼자 사는 누나와 어머니가 제대로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뻔했다. 만나지 않은 동안 생긴 각자의 일화 그리고 아버지와의 기억을 줄지어 뱉는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건 온전히 우리만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결코 알 수 없을 과거.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전말을 안다는 건 생각보다 강한 유대를 갖게 한다. 그래서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말해도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입을 맞춘 듯 나쁜 기억은 단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기억은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는 좋은 것만을 남기고 떠난 것처럼 말했다. 혹은 나쁜 것들은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묻은 것처럼.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이니, 어머니와 누나를 자주 보지 않을 것이다. 자주 보지 못하는 만큼만 멀어져서 덜 걱정하고 덜 우려하며 살고 싶다. 그러다 아주 가끔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아버지가 남긴 좋은 기억만 나누면서.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바카라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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