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호의가 사람을 건너갈 때

(Couchsurfing에서 배운 것)

by류정uk


한국에 “되로 주고 말로 받다”라는 속담이 있다.


조금 주고 많이 받는다는 이 오래된 말의 의미를, 독일 청년 토레(Thore)를 만나며 비로소 삶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인연의 시작은 뜻밖에도 Couchsurfing이었다.


약 2년 전, 토레에게서 조용하고도 조심스러운 메일 한 통이 왔다. 밀양의 우리 집에서 잠시 머물 수 있겠느냐고.


나는 당시 영국에 있어 곁을 내줄 수 없었다. 그 빈자리를 네 명의 한국인 지인들이 대신 채웠다. 나이도 직업도, 삶의 궤적도 달랐지만,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내어 토레를 보살폈다.


첫날은 대학 후배가 맡았다. 대구역에서 토레를 만나 차에 태우고, 하루를 통째로 바카라임졌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독일 청년을, 선배가 부탁했다는 이유 하나로.


잠자리는 내가 후원하던 곤충 학교에 세워둔 캠핑카였다. 곤충 학교에서 잠자리라니. 토레는 주인 없는 그 캠핑카에서 사흘을 묵었다.

나는 소소한 비용만을 부담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그들의 호의였다.


며칠 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정말 좋은 청년이었어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돌고 도는 것’의 힘을 믿어왔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열어둔 문은 언젠가 다른 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어진 순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후 토레에게서 편지가 왔다.

“언젠가 직접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 문장은 오래 기억 속에 남았다.


시간이 흘러, 작년 5월. 나는 어린 시절 친구 세 명과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났다. 마지막 목적지는 헬싱키였다.

헬싱키로 떠나기 사흘 전, 지나가는 말처럼 토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핀란드 간다고. 답장은 한 시간도 안 돼 왔다.

"저 지금 헬싱키에 있어요. 공항으로 갈게요."

친구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이 넓은 세상에 그게 말이 되나.


입국장 문이 열리자, 사진 속 그 얼굴이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생각보다 키가 훨씬 컸다. 2년 동안 메일로만 오가던 사람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했다. "드디어 만나네요."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틀 동안 우리와 함께했다.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고, 네 명의 ‘한국 할머니’ 짐을 들고 버스와 기차, 택시를 갈아타며 도시 곳곳을 안내했다. 그 모습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워, 마음 한켠이 계속 따뜻했다.


그 순간, 나는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아, 이게 바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거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토레는 영국 브로드보텀에 있는 내 집에도 머물렀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곧 박사 과정을 시작할 똑똑한 청년이었지만, 부엌과 집안을 다룬 그의 손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놀라운 요리사이기도 했던 그는, 음식을 만드는 손길에서 과학 실험처럼 정밀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집 안 여기저기를 조용히 고쳐 나갔다. 고장 난 소켓, 엉킨 컴퓨터, 말썽이던 조명까지. 나는 전구 하나만 갈아줘도 고마울 텐데, 그는 아무 말 없이 모든 일을 끝냈다.


대구역에서 후배가 내어준 하루와, 곤충 학교 캠핑카에서 보낸 사흘이, 헬싱키 공항에서는 할머니 넷의 짐이 되고, 브로드보텀에서는 부엌의 조명이 되었다.

토레가 떠난 지금도, 그 조명은 깜빡이지 않고 켜진다. 이제 우리 집에서 깜빡이는 건 내 기억력뿐이다.


우리 집 불이 꺼지지 않는 데는, 독일 청년의 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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