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들춰보기
‘서유’를 군대란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일부 장면을 페이스북으로 보고 ‘언젠가 꼭 극장에서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번 볼 기회가 있었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더스트’를 봤다. 빨간 옷을 입은 승려가 세계를 걷는다. 굉장히 느린 걸음으로. 모든 ‘행자’ 연작이 이렇게 요약될 수 있지만, 실은 다 다르다.(다를 것이다.) 차이밍량 감독과 배우 이강생을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만났다. 놓칠 수 없는 인터뷰였다.
-시작이 궁금하다.
=차이밍량 "2001년도에 아홉번째 장편을 마치고 쉬고 있을 때, 대만 국립극장에서 무대극 연출을 부탁받았다. 그때도 이강생과 함께 작품을 했는데, 내가 어려운 방식으로 이동해달라고 요청했다. 극장 무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17분이 걸렸어. 이강생이 걸어가는 장면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워서 독립적인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존 영화 문법에 지겨움을 느끼고 있던 참에 시작하게 됐다."
-차이밍량 감독에게 ‘행자’ 연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렇게 오래 걷게 될 줄 알았는지.
=이강생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걷게 될거라고 전혀 생각 못했다.(차이밍량 웃음) 영화 펀딩이 성공해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계속해서 찍었다. 평생의 직업이 될 줄은 예상 못했다. ‘행자’ 연작을 찍기 위해선 매년 삭발을 해야 한다. 걷는 행위 자체는 너무 고생스럽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 소모도 크다. 그렇지만 매년 수행자의 심정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마음으로 영화에 임하고 있다."
-행자가 ‘서유기’ 삼장법사의 여정에 착안했다는 점은 들었다. ‘행자’의 핵심은 무엇인가?
=차이밍량 "다들 11번째 ‘더스트’까지로 알고 있는데, 체코에서 찍은 게 있어서 현재까지 12편 있다. 변하지 않는 핵심주제는 이강생의 느린 걸음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데 행자는 쉽지 않은 여정을 이어간다. 사실 새로운걸 찍어내는 건 어렵다. 이 영화는 스토리도 없고, 극의 전개랄 것도 없다. 다만 도시의 변주가 들어가는 거다. 중요한 것은 이강생의 느린 움직임. 이것이 변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주제다. 이 영화가 세계 관광지를 소개하는 영화는 아니니까."
-스토리텔링이 없는 영화다. 현대미술과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섣부른 질문이지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차이밍량 "영화가 영화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기존 영화 문법에 너무 얽매여서 영화가 고인물이 됐다. 기존 영화관도 돈버는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란 생각도 들고. 이미 21세기, 세로운 시기가 도래했는데, 영화는 변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채널이 바뀌었는데 영화는 여전히 비슷비슷해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자’를 시작하게 됐다. ‘행자’로 영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중요한건 영상이다. 영상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관에 머물지 말고 극장 무대 , 미술관으로 옮겨져서 상영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관객들이 보면서 새로운 영화의 개념을 가지기를 바랐다. 기존에 가졌던 영화에 대한 오해도 풀고. 개인적으로는 미술관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영화도 새로운 것을 관객에게 주면 좋겠다. 창작이 자유로운 미술관처럼 영화도 장르 따지지 말고 줄거리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느린 움직임이 왜 중요한건가.
=차이밍량 "세계가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뭔가를 너무 편하게 추구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세계는 조금 더 천천히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고, 잠시 멈춰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을 직면함에 있어서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리듬으로 봤을 땐 행자의 움직임은 일종의 반역이고, 이 시대 속도에 대한 저항이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몇일 있으면 일흔이 된다. 일을 많이 하고 싶진 않다.(웃음) 예전에 같이 했던 배우들과 다시 한 번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은 든다. 저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혁신적인 것이라면 인공지능(AI)가 떠오르는데, 좋은 툴(도구)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를 만든다면 툴은 상관이 없다. AI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굉장히 느린 걸음을 걸어야 했다. 걸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강생 "걸을 때는 머릿속을 최대한 비우려고 한다. 주변에 소음도 많고, 구경하는 행인도 많아서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속으로 불경을 외우기도 한다. 사실 감독님이 컷을 외치길 간절히 바란다."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이강생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 도쿄에서 촬영했을 때다. 당시 겨울이어서 영하였는데, 새벽에 촬영했다. 맨발에 하수도관 철판 뚜껑 위를 걸어야 했다. 동상에 걸렸고, 원래 목이 불편했는데, 완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급히 차이밍량 감독이 나를 캡슐 호텔에 보내줬다.(웃음) 그때 몸을 추스렸던 게 기억에 남는다."
-행자가 기울어져서 걸을 때가 있다. 느린 걸음을 걷는 데는 신체적 고통이 클 것 같은데.
=이강생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목을 다친지 오래라 숙이고 걷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닥에 날카로운 게 보일 때 피하려고 그럴 때가 있다."
=차이밍량 "이강생이 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형감이다. 아주 아주 느린 속도로 걷기 때문에 한쪽 발이 몸 전체를 오랜 시간 지탱해야 한다. 걷는 연기는 따로 디렉팅을 하지 않는다. 배우가 자유롭게 평형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켜본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이다. 차이밍량 감독의 변화가 있다면.
=이강생 "감독님이 내게 항상 바라는 것은 영화의 품질이다. ‘행자’ 연작은 이제껏 많이 촬영했고, 비슷해 보이지만 새로운 요소를 그 안에 넣기 위해 감독이 애쓰고 잇다는 점을 알고 있다. 대신 나의 태도는 같다. 삼장법사의 마음으로 걷는다는 점이다."
-당신들은 영혼의 동반자인 것 같다.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차이밍량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업하는 방식은 다른 영화감독들과 많이 다르다. 나는 상업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강생과 작업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결정이다. 왜 이강생을 선택했냐면 이 분은 내게 굉장히 큰 울림,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강생의 말 속도와 걸음걸이는 굉장히 느리고, 됨됨이도 진중하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스타일을 정말 좋아한다. 영화는 스토리텔링이나 감정 표현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분의 느린 모습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이강생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같이 작업하게 되지 않을까."
=이강생 "간단히 말하면 삼장법사와 손오공 관계라고 생각해달라.(차이밍량 웃음) 원숭이에게 불경을 읽어주시는 것처럼, 나도 손오공처럼 반발심이 있어서 다른 감독과 다른 작품도 하고 있지 않나. 다른 작품을 하다가도 스승님이 부르시면 얼른 돌아와서 함께 작업하는 거다."
-이번 영화 ‘더스트’를 보면서 ‘행자’ 연작이 조금씩 친절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차이밍량 "그런 생각을 일부러 한 적은 없는데.(웃음) 사실 모든 ‘행자’ 작품은 그 앞 작품과 다르다. 이강생이 화면에 존재한다는 것, 전 세계를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세계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행자’ 모든 작품은 다 다르다. 나는 지구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같다고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이강생의 느린 속도로 다시 한 번 잘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숙고하다가) "‘더스트’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을 찍기 전에 대만 타이베이에서 행자 연작 시리즈 10편을 마라톤처럼 연속 상영한 적 있다. 그때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10편을 쭉 다시 봤기 때문에 ‘더스트’를 찍을 때 가장 긴장하지 않은 릴랙스 상태로 작업했다. 스페인이란 도시도 그런 매력이 느껴졌다.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걸까. 다른 영화들에 비해 도시의 풍부한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전 세계를 걷는다 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건가. 이강생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건가.
=차이밍량 "제일 중요한 것은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영화제에서 요청을 받아 작업을 한다. 그저께 전주에서 ‘행자’ 연작 작품을 크랭크업(촬영 종료) 했다. 이 작업은 멈출 수 없고, 언제까지 할지는 알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진행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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